유현

정통판타지 au - 4화

온점001 2024. 10. 25. 17:55

https://youtu.be/sSmK6-O-0gk

 

 

 

 

 

 

 

 

 

 

 

#1

 

 “결국 허탕이었네.”

 “그럴 것 같았지만 말이야.”

 

 어딘가 허탈해 보이는 유진과 달리 아현의 반응은 담담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쥔 둘. 하지만 던전의 최심부엔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마법은커녕 마도서 한 권조차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퀴퀴한 먼지가 쌓인 옛 보물들 뿐. 그조차 가치가 그리 크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헛수고를 한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소문은 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툴툴대는 유진이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리며 시선을 앞으로 두자 언덕 저 아래로 마을 하나가 보인다. 원래였다면 저곳이 둘의 이별이 예기되어 있던 곳일 테다. 그 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저 마을을 보니 제 친동생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걷는 그의 뒤통수를 가만히 응시하는 한 쌍의 눈동자. 아현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것인지 던전을 나온 직후부터 그다지 말수가 없었다. 마법을 얻지 못해서 실망한 것일까. 유진은 단지 그렇게 어림잡을 뿐이었다. 언덕을 다 내려오고 숲의 오솔길로 들어서던 그 순간이었다.

 

 “아까 그 말 진심이야?”

 “어, 엉? ……무슨 말?”

 

 뒤에서 갑작스레 그의 팔을 잡아채 당기는 그녀의 행동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을 뻔한 것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 버티고 선다. 당황한 것이 선연해 우스운 저와 달리 저를 담은 푸른 두 눈에는 평소의 장난기라곤 조금도 서리지 않은 채였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듯 제 질문에 대한 답이 한참 후에야 느릿하게나마 흘러나왔다.

 

 “원하는 건 전부 들어준다던 말.”

 

 순간의 정적이 둘 사이를 스친다. 고요히 지나가는 바람만이 그녀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린다. 돌이켜 봤을 때 유례없을 정도로 엉망인 꼴을 하고선 전례 없을 정도로 이토록 반짝이는 눈이라니.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혹은 떼를 쓰는 것만 같은 어린아이의 것과 똑 닮은 모습이다. 그 맑은 벽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의 입매가 씩 말려 올라간다.

 

 “당연하지. 왜. 갖고 싶은 거라도 생겼어?”

 

 뭐든지 말해보라는 양 말하는 투가 평소와 달리 자신만만하다. 저를 이렇게 바라보는데, 저런 눈을 하고서. 그런 너를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별도 따주지 못할쏘냐. 그는 그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더랬다. 또 다른 던전에 대해 듣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대마법사에 필적하는 귀중한 마도서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이런저런 추측을 떠올리던 순간 제 팔을 쥔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실린다.

 

 “너.”

 “뭐든지 말만……. ……엥?”

 “너를 줘.”

 

 그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번져가는 것과 달리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보였다. 팔을 움켜쥔 그녀의 악력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통증은 없었으나 얘가 이렇게 힘이 셌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하고 또 선명하다. 또 다른 손 하나가 천천히 올라가면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싫으면 빼도 좋다는 양 아주 느리고 여유로운 동작. 이는 마치 누구도 길들이지 못했던 짐승을 다루고자 하는 애달픈 손길과 닮은 채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그에게 붙박은 두 눈은 그를 잡아먹을 듯 그악스러운 색을 지닌다.

 그녀가 건넨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인지 혹은 갑작스러운 말에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여전히 멍한 그에게 다시 한번 그녀가 입을 연다. 아주 느릿하지만 또박또박한 음성엔 분명 부드러운 강압이 서린 채다.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떼를 쓰고 조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 적어도 그녀가 그에게는 단 한 번도. 아니, 어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리라.

 

 “갖고 싶어졌어.”

 

 귀중한 물건을 매만지는 듯한 그녀의 검지 끝이 그의 입매에 닿는 순간 그 입가에 호선이 새겨진다. 벅차오르는 고양감이 그의 온낯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럼 가져야지.”

 

 그는 제 뺨 위에 있던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쥐어 그 손등 위로 가벼이 입 맞추곤 다시금 제 뺨을 가져다 댄다. 던전 안에서 그녀가 제게 그러했듯 그 온기를 느끼며 그녀의 손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비어있던 그 손 안에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어떻게 소유되어 줄까. 어떤 나를 원해?”

 “전부.”

 

 그의 물음에 즉답한 그녀가 그제야 웃는다. 평소와 다름없이 느슨하고 가벼운 미소. 그럼에도 그를 담은 눈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으니 이는 유일한 제 애정에 대한 증명인 셈이다.

 

 “나는 전부를 원해.”

 

 

 


 

 

 

 

 

#2

 

 한편, 유진과 아현이 있는 정반대편의 오솔길에는 상당히 오랜 침묵이 유지되고 있던 터였다. 저기……. 그리고 그것을 깨뜨린 건 아리의 아주 조심스럽고 소심한 한 마디였다.

 

 “미안해. 내가 너무 약해서…….”

 

 그에 그녀보다 한 발자국 앞선 채 말없이 걷고 있던 그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느릿하게 뒤를 돌았다. 그런 그의 낯은 상당히 어이가 없어 보이는 듯했다.

 

 “지금까지 그 생각하느라 아무 말도 없었던 거야?”

 

 어떠한 대답을 두는 것 대신 침묵으로 긍정을 표하는 그녀는 여태 보지 못했을 정도로 주눅이 든 채였다. 그와 눈도 맞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대체 그 여자가 이 녀석한테 어떤 사람이었던 건지. 그는 문득 둘의 관계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일단 그 이야기는 차차 듣도록 하고.

 그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시선을 반대로 넘겨버렸다.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얕봤어.”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올린 그녀는 거의 울 듯한 얼굴이었으나─아마도 울기 직전이었던 듯 싶다─그의 말에 그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다른 곳을 바라보며 그가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한참 우물댄다.

 

 “그래서 진 거야.”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걸 그저 사실로서 알고 받아들이는 것과 누군가의 앞에서 제 입으로 직접 시인하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니. 하지만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가끔 온다. 이 녀석처럼 제대로 사실을 짚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저 모른 척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는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잘못 아니라고.”

 “그치만…….”

 

 그가 최대한 담담하려 애쓰며 뱉은 말에도 그녀는 어딘가 개의치 않은 것인지 여전히 기가 죽은 채 다시금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는 순간 울컥 짜증이 솟구침을 느꼈다. 저는 자존심이 상하는 걸 참아가며 모처럼 이야기해 준 것인데.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매번 일을 망치고 그르치기 일쑤인─적어도 그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뭐, 솔직히 영 틀린 말도 아니었고─그녀에게 있어서 잘못을 시인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잠시 진정했다. 이 녀석,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건 생각 이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이니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그는 곤란하다는 양 깊게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다시 걸었다. 남을 격려하는 데엔 재주가 없었으니 이럴 땐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걷기를 수분, 그는 결국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이는 위로가 서툰 그만의 다정인 셈이다. 제게 뻗어진 손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녀의 낯은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얼굴에 점차 화색이 돌면 반대로 그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내밀어진 손을 꼭 잡아오자 그 낯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결국 시선을 돌려버린다.

 

 “근데 아까 그 말 진짜야? 구라 아니고?”

 “또 뭐가.”

 

 손을 잡은 이후로 아까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쓸데없는 말을 조잘조잘 늘어놓던 그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그가 심드렁한 기색으로 대충 답했다. 그러자 문득 그녀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목소리를 내리깐다.

 

 “나와 있는 넌 최강이야.”

 

 익숙한 어투와 한쪽 입매를 올린 표정. 거기다 끼지도 않은 안경을 올리는 듯한 제스처. 그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다시금 점차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먹이를 줬다간 더 놀려먹을 게 뻔하니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는 그였다.

 

 “시끄…….”

 “나와 있는 넌…… 최강이야.”

 “시, 시끄러워!”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한 그가 잡고 있던 손을 파다닥 털어내며 이어 무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 그녀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그.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여전히 그의 말을 반복해 따라했다. 둘의 여행길은 다른 곳과 달리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END

 

 “그런데 정말로 괜찮아?”

 “응? 뭐가?”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마법인가 뭔가……. 결국 못 얻은 거잖아.”

 “아~”

 

 유진의 말에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아현이 탄성을 뱉는다. 어차피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물론 강력한 마법에 관한 것 정돈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마저도 보기 좋게 비껴나갔다─ 생각보다 순진하네. 아니면 이 사람은 내심 내가 그걸 얻길 진심으로 바랐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생긋 웃는다.

 

 “됐어. 이미 얻었으니까.”

 “엥? 언제?”

 “그건~ 비밀~”

 

 혀를 살짝 내밀고 가볍게 윙크한 그녀가 몇 걸음 가볍게 뛰어가더니 그대로 뒤돌아 그를 향해 웃었다.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천진한 모습. 그런 그녀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그였지만 곧 가볍게 웃고 만다. 뭐, 저 아이가 그렇다니 됐나. 또 저렇게 즐거워 보이니까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한 걸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그녀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