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Grey Spinning Flower

J♥C - 헤어진...? au

2022. 5. 8. 15:51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아무도 없는 별 中, 도종환>

 

 

 

 

 바람이 찬 겨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추운 건 질색이거니와 바깥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극심한 온도차. 그리고 왜인지 여름보다도 더 따뜻해 보이는 거리나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질적이라. 그럼에도 후드에 재킷을 걸치고 목도리를 빙빙 둘러맨다. 오랜만에 보는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귀찮다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한숨이 절로 흐른다. 흐트러진 침대 위에 휴대폰과 지갑을 줍고 이리저리 방 안을 둘러본다. 한참 그러고 있으면 빈 맥주 캔들 사이로 보이는 담배까지 챙기고 그것을 모두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을 나선다.

 새카만 밤하늘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환한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뒤덮여있다. 코와 귀의 감각이 얼얼하게 사라질 때 즈음.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싫고, 택시를 타자니 애매한 거리라 그냥 걷기로 했던 제 결정을 저주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주 작게 보이는 호프집 간판에 빨라지려던 걸음이 일순 멈췄다. 먼 발치였음에도 나는 한눈에 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너와 나의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공백이 그토록 길었음에도. 네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은 여전히 허리 아래까지 내려왔고 친구들을 향해 짓는 눈웃음은 늘 그렇듯 부드럽고 다정해 보였다. 때로는 뭘 그렇게 고민하는 것인지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곰곰이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참 어리던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듯 보다 성숙해 보였지만 결국 너는 너였다. 나는 느릿한 동작으로 전봇대 뒤에 살짝 몸을 가린 채 벽에 기대어 서서 그쪽을 한참 바라보았다. 휴대폰의 전원을 눌러 시간을 확인하니 막차가 곧 끊길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넌 너를 배웅하는 친구들과 그렇게 수분 동안 인사를 나눴다. 변하지 않은 미소로,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 모습에 왜인지 속이 탔다.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 새에 담배 한 개비를 다물었다. 입 밖으로 새는 연기에 묻힌 한숨이 길고 짙었음에도 시선만은 여전히 네게 고정되어있는 건 하릴없는 일이었다. 네가 반대쪽으로 멀어져 가면 그것 또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잠잠히 지켜볼 뿐, 네가 시야 밖으로 온전히 빠져나간 뒤에야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뗐다.

 

 


 

 “뭐야. 늦게 와놓고 벌써 가냐?”

 “팔자 좋은 대학생이랑 다르게 내일도 출근이다.”

 “이 새끼 말하는 본새 봐라.”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외관이 바뀌었을지언정 여전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한 번 두 번 기울어지는 술잔의 횟수와 비례해 풀어져갔다. 어느덧 시계는 오전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때 즈음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번호를 교환한 후에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술집을 나섰다. 아까보다도 차가운 공기가 더운 뺨에 닿아 취기를 미약하게나마 앗아갔다. 오는 길이 그러했듯 가는 길은 외로웠다. 익숙한 적막감이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으며 여느 때와 달리 마음에 들지가 않던 찰나, 커다란 제 이름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좁은 골목 안으로 짧게 울려퍼졌다. 등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에 당혹스러움 반 짜증 반을 담은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시계침 튀는 소리와 함께 강제로 흘러가던 시간이 일순 멈췄다. 너였다.

 커다란 갈색의 눈동자엔 미약한 원망과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그 시선이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감정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눈길을 마주하고 있던 건 아주 잠깐이었으며 이미 망가진 초침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두 눈을 옆으로 슬그머니 옮겨버렸다.

 

 “어…. 어어, 오랜만이다.”

 

 아, X발…. 맹한 목소리가 튀어나오자마자 들었던 생각이었다. 수년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저런 것이라니. 이보다도 더 멍청한 대답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당장 죽어버리라고 자신을 저주하고 있을 무렵. 네 눈에 실린 감정이 한층 더 짙어지더니 이내 들이마신 숨이 전보다 더 강렬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기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안 했더니…. 동창회 안 온 줄 알았는데 내 앞에서만!”

 

 그 이후로도 네 말은 꽤 한참 이어졌다. 아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사실 네 말은 잘 들리지 않았고 오랜만에 보는 언제나의 네 모습을 그저 잠잠히 눈 안에 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너는 여전히 용감했으며 소중한 것을 아끼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꽤 오래 무어라 말을 쏟아내던 네 음성에 점차 물기가 서리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 끝자락이 확연히 떨렸다. 네가 촉촉해진 눈가를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는 것을 봤음에도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꾸준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도적어도 잘 지내냐는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데….”

 

 나직한 음성과 함께 저를 다시 동공 안으로 담는 네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제 손이 허공에서 움찔대곤 다시금 거둬지면 나는 또 한 번 네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런 나와 달리 내게 고정된 네 시선은 선명했으며 흐림 한 점 없었다. 왜일까. 그것에 왜인지 모를 짜증이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어떤 사이였는데?”

 

 원망 섞인 네 음성이 애정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이쪽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물음 뒤로 옅게 이어지는 것들은 피곤함, 귀찮음 그리고 짜증 따위로 뒤덮인 그것은 온통 가짜로 범벅되어 내뱉어선 안 될 것들로만 이뤄진 감정의 덩어리였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양 순수한 의문을 던지는 듯한 어투는 강제로 만든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으나, 그 의미 없는 행위가 짧게 끝을 맺으면 그제야 네게로 시선을 다시 고정시켰다.

 

 “무슨 그렇게 대단한 사이였다고.”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아, 이게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면,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다시 만난다면 잘 있었냐, 어떻게 지냈냐 따위의 말들과 함께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막상 만나니 입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죄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못난 방식으로 널 향해 날아들었다. 어렸을 때야 누구나 실수하잖아. 별로 대단한 추억도 아니고. 이어지는 어조가 여전함에도 그 속은 점차 새카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외면하고 있던 감정들이 너와 직면한 순간부터 겉잡을 수없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욱여넣어 걸쇠까지 걸어놓았던 상자에 균열이 일며 꾹꾹 눌러 담았던 내용물이 틈새를 비집고 흐르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요동치는 감정은 너무도 익숙지 않은 것이라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그렇듯, 그렇게 쉽게 끝났던 거겠지.”

 

 실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말을 뱉는다. 전과 달리 피곤에 절은 짙은 벽안에 네가 담기면 눈 아래로 진 그늘이 훨씬 짙어진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네가 잡아주길 네가 좀 더 우리를 아껴주길 바랐던 한없이 이기적이고 어린 마음이 원망으로 치환된 채 널 찌른다. 발끝부터 온몸을 좀먹기 시작하는 불쾌감은 비단 너를 향한 유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감정의 원천은 오래도록 직면하지 않았던 수많은 이유에 비롯된 슬픔이 뒤엉켜 가시의 형태로 굳어버린 나를 향한 실망감과 혐오감일 테다. 천천히 올린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는 제 손길이 거칠었다. 긴 한숨에 달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지면 그제야 취기가 완전히 가셨다는 걸 자각한다.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보는 건 아마도 네 낯을 볼 자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한참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달을 찾듯 구름 속만 헤매다 시간이 늦었음을 깨닫고 조용한 적막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네 눈은 맞추지 못한 채 그렇게 널 스치듯 지나친다.

 

 “인상 찡그리지 마.”

 

 귓전에 속삭이기라도 하듯 네 옆을 지나가며 작게 읊조린다. 아까 먼발치에서 널 보았을 때를 떠올리고 건넨 말이다. 언젠가 네 미간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건들며 했던 말이었음을 어슴푸레 기억한다. 물론 내뱉고 난 후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땐 지금처럼 조용히 읊조리 듯했던 것이 아닌, 장난기가 가득 담긴 음성이었고 널 향해 웃고 있었단 점이 큰 차이였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추억의 조각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함을 깨닫는다.

 이젠 춥기만한 겨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너와 헤어졌던 그날. 우리가 각자의 세상으로 걸어나가던 그날. 내 시계는 2월의 졸업식 속에 여전히 머물러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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