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Grey Spinning Flower

조각글1 (by.ㅎㅍ)

2024. 2. 5. 03:51

 

 

 

 

 

1
 두 팔을 올리고 턱을 당긴다. 주먹을 쥐어 뻗는다. 자연스러운 회전이 실려 있다. 간단하지만 숙련된 기교가 느껴지는 동작이다. 시범을 보인 유진은 뻔뻔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오, 하고 아현이 짧게 감탄사를 뱉는다. 진심을 담아 손뼉을 친다. 공연자에 대한 예의이자 그 민첩한 몸놀림을 향한 존경이다. 유진은 그 반응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듯 의자에 앉은 아현에게 다가간다. 더 깊은 흥미를 갖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끌어들이는 것이다.


 "한번 해 볼래?"
 "어떻게 하는 건데?"

 아현은 말했다. 목소리에 신기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유진은 허공을 향해 두 번 주먹을 내질렀다. 오른손과 왼손이 빠르게 교차했다. 짧은 거리를 둔 발은 상체가 움직일 때마다 체중을 번갈아 실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가 말했다. 몇 번 반복되는 동작을 지켜 본 아현이 일어났다. 어설프게나마 유진을 따라 하며 자세를 잡았다. 곧장 꽉 쥔 오른손을 휘둘렀다. 미숙함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이야……."
 "그건 무슨 반응이야?"
 "생각 했던 것보다 더 귀여워서."

 유진이 키득거리자 아현은 눈 앞에 선 그에게 주먹질했다. 유진은 몸을 뒤로 당겨 물러났다. 그리고 이죽대는 얼굴을 다시 아현에게로 들이밀었다. 자기 뺨을 건드리며 말한다. "때려 봐. 안 피할 테니까."

 초심자의 제 몸 하나 가누기 바쁜 공격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현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고개만 살짝 돌려 피하기를 세 번째였다. 어차피 저런 엉성한 자세로 때려봤자 별 타격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유진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유진은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자각이 없었다. 아현의 승부욕이었다.

 

 아현은 유진이 보였던 동작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유진이 말했던 이론을 중얼댔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칠 기세였다. 그마저도 유진은 어린 동생의 애교로 보고 있는 것인지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현이 두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고 자세를 잡았다. 오, 아까보다 훨씬 그럴듯한 자세에 유진이 짧은 탄성을 뱉었다. 그 얼굴이 이죽대는 모습이라 아현은 괜히 더 이골이 난 낯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현이 움직였다. 안정된 보폭, 살짝 틀어서 치는 동작, 완벽에 가까운 정석이었다.

 

 "아."

 유진의 입밖으로 아주 침착한 비명이 뱉어졌다. 콧잔등을 얻어맞은 순간 반사적으로 얼굴 아래쪽을 가렸다. 천천히 손을 치우자, 피가 묻어 나왔다. 아현도 놀란 모양이었다. 당황해 묻는다.

 "괘, 괜찮아?"
 "어어. 어. 괜찮아."

 피를 흘리는 와중에 말을 증명하듯 손사래를 쳤다. 유진의 안에서 새로운 주의 사항이 하나 떠올랐다. 어떤 상황이라도 제 여동생을 아기새처럼 대하지는 말 것, 코를 눌러 지혈하며 다짐했다.





2
 감정으로 단단히 묶인 실타래는 쉽게 풀 수 없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풀어내기보다 차라리 불을 지펴 태우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굳게 닫힌 문을 앞둔 유진의 시선에 긴장감이 다분하다. 

 "삐쳤어?"

 문 너머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두드릴지, 아니면 돌아갈지 잠시 고민했다. 짧은 시간이었다. 손잡이를 비틀어 열자마자 침대에 누워 몸을 돌린 아현이 한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조심해 근처에 앉으려 했다. 행여 못 들었을까 헛기침으로 방문을 알렸다. 아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소한 문제였다. 가볍게 다룰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그랬다. 좀처럼 실수나 헛점을 보이지 않던 아현의 실수를 잡아채 놀려댄 것이 화근이었다. 한껏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아현의 모습이 귀여워 몇 차례 놀렸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방에 틀어박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흘 내내 틈만 나면 놀렸으니 좀 과하긴 했을지도. 그가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간 유진은 평소처럼 아현에게 손을 뻗는 대신 옆에 걸터앉았다. 완전히 등 돌린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부루퉁한 분위기가 퍽 귀여웠다.

 "삐친거야?"

 "……."

 "……삐쳤네."
 "아니거든."

 아현의 상태를 확정짓는 발언에 그녀가 즉답했다. 몸을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 유진은 마주 본 채 능청스레 두 손을 들었다. 그 몸짓에 아현은 보다 열이 받은 얼굴이 되더니 이불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실렸다. 그런 그녀와 정반대로 그는 웃었다. 평소와 다른 아현의 모습이 오히려 색다르게 비친 듯했다.

 "……왜 웃어?"
 "귀여워서."

 "하?"

 유진은 당연하다는 양 말했다. 섣부른 대답이었다. 아현의 인상이 일그러지며 이내 손에 잡힌 베개로 유진을 마구 때려댔다. 팔로 몸을 가려 일어나면서도 그의 얼굴에 있는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진짜 짜증나……", 아현은 잔뜩 약이 오른 얼굴로 닫히는 문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첫번째 썰은 이 썰 보고 생각이 나서.... 적폐시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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